|
|
2010.07
28
멀리 바라다 보이는 소령원 정자각
최숙빈이 잠들어 있는 '소령원'은 너무 먼 곳(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있었다. 원래는 서오릉을 들러 최숙빈이 잠든 소령원까지 자전거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전 답사 결과, 소령원까지 가는 길이 너무 험했다. 갓길이 없는데다 높은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웬만하면 어떻게든 가볼 심산이었는데, 감기 기운으로 몸이 좋지 않아 도저히 그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소령원은 버스를 타고 답사를 갔다 오는 걸로 대신했다.
소령원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니다. 능이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최숙빈이 역사적으로 그리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소령원에 최근 사람들의 발길이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최숙빈이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 '동이'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앞으로 장희빈과 최숙빈 두 사람이 서로 반목하는 관계로 발전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울창한 나무 숲 속, 소령원
드라마와 달리 이 두 사람은 역사적으로 처음부터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다.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가 20살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을 때, 숙종은 장희빈을 왕비로 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비천한 집안 출신의 장희빈이 왕비가 되는 데는 장애가 너무 많았다. 결국 당시 권력자 집안이었던 민씨 가문의 딸이 왕비가 되는데, 그가 바로 인현왕후다.
장희빈에게는 그런 인현왕후가 자신이 그렇게 갈망하던 것을 빼앗아간 인물로 비쳤을 것이다.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증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인현왕후는 또 인현왕후대로, 자신이 왕비인데도 임금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장희빈을 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인현왕후가 자식을 낳지 못한 것에 반해, 장희빈은 숙종이 그렇게 애달아하는 아들까지 낳은 터였다.
인현왕후는 결국 장희빈과의 다툼에서 져 모든 특권을 박탈당한 채 평범한 서민이 되어 6년여 동안 친정집으로 돌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현왕후의 뒤에는 최숙빈이라는 막강한 지원자가 있었다. 인현왕후의 시녀로 궁중 생활을 한 최숙빈으로서는 인현왕후를 왕비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장희빈이 처음부터 맘에 들 리가 없었다. 장희빈은 나중에 다시 왕비의 자리로 되돌아온 인현왕후를 죽도록 저주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게 되는데, 그때 장희빈의 죄(모함이라는 설도 있다)를 숙종에게 고해바친 사람이 바로 최숙빈이다.
정자각 뒤쪽으로 보이는 최숙빈 묘
숙종에게는 차례로 세 명의 왕비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아들을 낳지 못했다. 그에 반해, 장희빈과 최숙빈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숙종이 애타게 기다리던 아들들이다. 후에 장희빈의 아들은 나약한 군주 경종(조선 20대 왕)이 되고, 최숙빈의 아들은 강력한 군주 영조(조선 21대 왕)가 된다. 두 사람 모두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들이 왕위를 계승하기는 했으나, 그 왕이 어떤 권력을 행사했느냐에 따라 사후 이 두 사람의 무덤 역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경종이 영조와 같이 막강한 힘을 가진 군주였다면, 그의 어머니 무덤 역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 터이다. 영조는 어머니에게 효를 다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어머니 무덤 역시 상당히 관리가 잘 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소령원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지 상당히 스산한 분위기다.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장희빈이 같은 묘역인 서오릉(고양시 용두동) 안에 잠들어 있는 것에 반해, 최숙빈 홀로 이 먼 곳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더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현재 숙종과 인현왕후는 서오릉 안의 명릉에 함께 나란히 누워 있고, 장희빈은 명릉과는 좀 떨어진 반대편 구역에 작은 자리를 차지한 채 누워 있다. 명릉에 비하면 장희빈의 묘가 무척 초라해 보이기는 하지만, 평소 그의 묘를 찾는 사람이 많아 최숙빈의 묘처럼 쓸쓸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명릉, 숙종(사진 오른쪽)과 인현왕후 묘. 세번째 왕비인 인원왕후 묘 쪽에서 바라본 장면.
대빈묘, 초라한 모습의 장희빈 묘. 하지만 그의 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조선시대에는 왕비 또한 권력의 한 축이었다. 애초 권력을 가진 자가 왕의 일족이 될 수 있었고, 왕의 일족이 되어야만 더 큰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자연히 누가 왕의 총애를 받느냐에 따라, 그 뒤에 줄을 댄 권력도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천한 집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장희빈과 최숙빈 역시 그 뒤에는 사대부가의 냉엄한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그리고 장희빈과 최숙빈 사이에 벌어진 싸움 역시 권력다툼의 양상을 띠고 있다. 조선시대 왕가를 둘러싼 권력 투쟁에서 비롯된 결과가 이 세 사람의 무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죽은 뒤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역사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소령원은 공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다. 학술적인 목적 등 실제적인 사유가 없는 한, 공개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동이>가 방송이 되고 난 이후로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다. 지금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소령원 입구.
* 소령원에는 지난 4월 30일에 다녀왔다. 구파발에서 333번 버스를 타고 갔다. 소령원의 원찰인 보광사를 지나서 얼마 안 가 삼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우회전을 하자마자 소령원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리를 건너 호젓한 숲길을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그 길 한쪽 끄트머리에 소령원이 있다.
소령원 들어가는 길.
소령원 들어가는 길 옆의 신도비각.


